[책이 원작인 영화] 설국열차 : 봉준호가 창조한 새로운 설국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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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원작인 영화는 대부분이 그러하듯 원작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서 영화를 제작하죠. 하지만 때로는 책과 영화의 내용이 판이하게 다른 경우도 있습니다. 중심인물의 인종이나 성격, 성별이 바뀌는 경우도 있고, 원작과 전혀 다른 결말을 제시하기도 합니다. 2013년 개봉한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 역시 원작과 전혀 다른 내용을 선보이며 봉준호만의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했습니다.
1984년 프랑스에서 발간된 뱅자맹 그르랑의 <설국열차>는 만화와 소설 형식의 중간 형태인 그래픽 노블로써 영화 <설국열차> 보다는 조금 더 암울하고 절망적인 분위기의 내용입니다. 원작 속 설국열차는 꼬리칸으로 인해 열차에 부담이 생기므로 꼬리칸을 떼어버리려는 의견이 나옵니다. 그로 인해 꼬리칸을 탈주하는 프롤로프가 앞 칸으로 나아가며 마주하는 끔찍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그려내죠.
영화 <설국열차>는 원작의 세계관을 그대로 가져왔지만 봉준호 감독의 독창적인 시각으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 <설국열차>는 원작과 달리 열차를 지배하는 윌포드에 대항하여 꼬리칸 사람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진취적인 모습이 나타납니다. 꼬리칸 사람들은 머리칸으로 나아가기위해 크고 작은 전투를 하게 되고 자신들이 겪었던 부조리한 진실을 알게 됩니다.

원작에서는 중심인물들이 모두 백인으로 이루어져있습니다. 영화 <설국열차> 속 중심인물들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죠. 하지만 원작이 출판 당시 시대적 배경을 고려하면 그다지 놀라운 현상은 아닙니다. 봉준호 감독이 그려낸 설국열차는 다양성이 공존하는, 정말 하나의 세계가 이 열차 안에 고스란히 담겨있는 느낌입니다. 인종의 다양성, 각 열차마다 가지는 특성들을 보고 있으면 그러한 점들이 더욱 피부에 와닿게 느껴지죠.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원작보다 꼬리칸의 열악한 상황을 적나라하고 심도있게 다루며 주인공들의 행동에 타당한 근거를 마련하여 탄탄한 서사를 만들어 냅니다. 원작에서는 이러한 부분이 조금 아쉬웠기에 영화를 보며 주인공의 입장에 좀 더 몰입하며 볼 수 있었습니다.

<설국열차>를 보고 '재미있다'라는 감정을 느끼고, 또 영화가 흥행했던 이유는 아마도 아직 우리 사회에 남아있는 신분제와는 다른 형식의 계급 때문일 것입니다. 극심한 빈부격차 속 저소득층은 설국열차의 꼬리칸 사람들일 테고, 고소득층은 설국열차의 머리칸 사람들이겠죠. 소득 불균형, 부의 세습으로 우리의 설국열차는 점점 그 간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누구의 잘못인지 이것이 부조리가 맞는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영화 속 꼬리칸 사람들처럼 우리가 머리칸으로 나아가고 싶어한다는 것만큼은 명확한 사실일 것입니다. 머리칸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하는 꼬리칸 사람들처럼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 속 보통의 사람들은 신분상승을 위해 생업을 걸고 도전을 해야 합니다. 보통의 우리들에게 도전이란 우리가 가진 단 하나의 목숨처럼 단 한 번의 기회를 뜻합니다. 죽음 후에 다시 부활할 수 없듯, 도전이 실패로 끝나면 우리에게 남은 기회가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머리칸에 도착한다고 해서 과연 행복을 보장받을 수 있는 것일까요? 영화 <설국열차>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셨으면 좋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