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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서평 : 읽으면 삼키고, 쓰면서 뱉는다.

[추천도서 - 소설]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 기억과 역사와 시

by 달책부록 2020. 6.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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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이미지
출처 : Pixabay by Candoyi

 

 

멘부커상을 수상한 리처드 플래너건의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은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한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입니다.

 

나치를 연상시키는 일본군의 극악무도한 저열함은 보는 내내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태국과 미얀마를 잇는 철로 공사를 위해 동원된 일본군 포로들은 415km의 죽음의 길을 맞이합니다. 다양한 국가의 포로들 중 오스트레일리아 포로 지휘관이자 군의관이었던 주인공 '도리고 에번스'는 담담하게 그 시절의 기억들을 이야기합니다. 절제된 감정들은 그 시절의 참혹함을 선명히 마주하게 만들고, 그의 기억 속의 인물들은 일그러진 역사 속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우리의 곁으로 다시 돌아옵니다.

 

사랑과 야망에 대한 가슴 설레는 기억이 고통과 비명이 즐비하는 전쟁의 역사 속에 뒤섞여 의미가 퇴색되는 한편, 희망이 찾아볼 수 없는 현실에서 유일하게 매달릴 수 있는 존재가 되어 그를 강렬하게 집착하게 만듭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시'는 어느새 그의 운명의 굴레 속에 똬리를 틀어 '동그란 원'을 그립니다.

 

우리의 기억은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내가 기억하는 기억은 내 기억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다른 누군가의 기억일까요. 그것도 아니라면 내가 만들어낸 환상일까요.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는 어디까지 진실일까요.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역사라고 논할 수 있을까요, 아니면 진실을 덮은 잔혹한 소설일까요.

 

진짜 역사라는 것은 그 시절을 견뎌낸 사람들의 기억을 모아 만든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자신의 잘못을 숨기려는 거짓된 이야기와 자신이 겪은 있는 그대로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의 대립을 통해 더욱더 객관적인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자료로써 받아들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전쟁으로 빚어진 수많은 희생들은 가해자들의 미화와 피해자들의 진실 공방으로 끊임없는 논란이 만들어지죠.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그로 인한 희생자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되풀이 하지 않게 후손들에게 '진실'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역사는 모두 함께 써나가는 것입니다. 승자에 의해 기록된 역사는 그저 그들의 '일기'일 뿐입니다.

 

전쟁을 겪었던 희생자의 목소리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책을 읽으며, 하루 빨리 그들의 목소리가 역사에 기록되기를 간절히 바라게 됩니다.

 

폭력만이 진실이며, 유일한 신이었던 그곳의 참상은 '도리고 에번스'의 동그란 두 눈동자에 고스란히 담겨 기억을, 역사를, 그리고 사랑을, 끝내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을 만들었습니다.

 

시스이의 임종 시는 대단원을 향한 동그란 마침표였을까요, 같은 곳을 맴돌게 되는 동그란 쳇바퀴였을까요.

 

소설이라기에 너무나 생생한 묘사가 잔혹하고 아름답게 다가옵니다.

 

"행복한 사람에게는 과거가 없고, 불행한 사람에게는 과거만 있다." - <먼 북으로 가는 좁은 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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